선교편지

사애리시(Alice H. Sharp) 선교사 유골 이장 사업

사애리시(Alice H. Sharp) 선교사 유골 이장 사업

 

서 만 철 (사단법인 한국선교유적연구회 회장)

 

Sharp 선교사와 사애리시 선교사

 

공주의 영명동산에는 110여 년 전 이 땅에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자기를 버리고 헌신적인 삶을 살다가 순교한 샤프(Sharp) 선교사를 비롯하여, 4명의 다른 선교사들의 자녀가 묻힌 아담한 선교사 묘지가 있다.

샤프 (1872-1906) 선교사는 미국 오하이오주에서 교역자로 일하다가 1903년 31살의 나이에 미국 감리교 선교사로 내한했다. 서울에서 황성기독청년회(YMCA)에서 언더우드, 헐버트, 에비슨, 게일 등과 함께 초대 이사로 기독교 청년운동을 활발히 펼치면서 정동제일교회와 배재학당에서 교육을 담당하던 샤프목사는 1904년에 공주선교부 책임자로 임명되고 이듬해에 아내 Alice H. Sharp(한국명: 사애리시)와 함께 공주에 최초의 서양식 벽돌 양옥집을 짓고 이주하였다.

그는 아내와 함께 공주에 선교부 본부를 두고 인근지역까지 농촌 선교의 어려움을 극복하며 순회선교를 하던 중에 불행하게도 장티푸스에 감염되어 1906년 3월 5일 34세의 젊은 나이에 순교하였다. 샤프 선교사로서는 한국에 온지 3년, 공주에 정착한지는 채 1년이 안된 시기이었다. 그의 묘지는 현재 영명동산에 모셔져 있으며 생명을 바쳐 선교했던 한국의 기독교 부흥의 역사를 함께하고 있다.

 

남편과 함께 선교를 하며 영명여학교의 전신인 명선학당을 설립하여 운영하던 신혼의 엘리스 샤프(Alice H. Sharp, 한국명: 사애리시)부인에게는 청천벽력이었고 모든 소망이 멀어져 가는 느낌이었다. 샤프 부인은 남편의 장례를 치른 후 미국으로 돌아갔다. “영명 100년사”에서 전하는 사애리시 부인의 이별장면이다.

“사애리시 부인이 명선학당의 운영을 스웨어러(Swearer) 여사에게 맡기고 공주를 떠나던 날 교회와 학당은 울음바다가 되었다. 이별의 슬픔 위에 남편을 잃고 자신의 소망을 버리고 떠나는 사애리시 부인의 모습이 너무나 애처로워 떠나는 사람이나 떠나 보내는 사람들 모두가 가슴이 뭉클 하는 심정에 몸 둘 바를 몰랐다.”

그러나 샤프부인은 기도 끝에 마침내 1908년 8월에 영명동산에 묻혀 있는 남편 곁으로 다시 와서 선교 활동을 계속하였다. 1909년에는 강경 만동(萬東)여학교와 논산에 영화(永化) 여학교를 세웠다.  이 땅의 여성들을 개화하기 위한 여성교육에  헌신하여 유관순과 같은 걸출한 독립운동가를 길러내었으며, 해방 후 자유당 정부에서 장관을 지낸 서울의 중앙대학교를 설립한 임영신, 한국 최초 여자 경찰서장을 역임한 노마리아, 한국 감리교 최초 한국인 여자 목사 전밀라 등이 영명여학교에서 그의 가르침을 받았다.  이러한 여성교육에 대한 공로로 1938년에 그의 공적비가 영명학교 내에 건립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특히, 한민족의 독립운동사에 별이 된 유관순 열사는 1914 ~ 1916 년 사이에 2년간 영명여학교에서 수학하였던 사실이 국가보훈처에 의해 인정 됨으로서 사애리시 선교사의 교육에 의해 유관순 열사의 민족정신이 길러진 것이 밝혀졌다. 사애리시 선교사는 1900년에 내한하여 1940년 일제에 의하여 선교사강제철수 조치에 의하여 쫓겨날 때까지 39년간 한국에서 헌신하였으며 이중 34년을 공주에서 교육선교를 하였다. 사애리시 선교사는 충청지역 근대여성교육의 어머니이자 한민족 독립운동의 별이 된 유관순 열사의 첫 스승이다.

사애리시 선교사에 대한 증언

 

1940년 일제에 의한 강제추방후의 사애리시 선교사에 대한 행적은 여태 알려진 바가 없었다. 선교유적 순례차 공주 영명동산을 방문한 순례객으로부터 사애리시 선교사의 아끼던 마지막 생존 제자인 박한나 권사님을 알게 된 것은 정말 우연이었다. 현재 99세로서 미국 LA에 살고 계신 박한나 권사님이 간직한 일대기를 추적하여 사애리시 선교사의 임종일자(1972.9.8.)와 마지막 거주하였던 곳과 납골묘까지 파악하게 되었다.

박한나 권사님의 ‘한나’ 라는 이름도 사애리시 선교사님으로부터 받은 성경에 나오는 이름이다. 사애리시 선교사님은 아침이면 남편 샤프 목사님의 무덤을 향해 ‘오늘은 부여 갑니다’, 그 다음날은 ‘논산과 강경에 갔다 옵니다’ 하고 매일 얘기하듯이 보고하면서 일생을 그렇게 보냈으며, 항상 그녀의 올갠 위에는 아들같이 젊은 남편의 사진을 놓고 생활했다고 회상했다. 사애리시 선교사님은 목소리가 너무 아름다웠으며, 올갠 반주를 해가며 “예수가 우리를 부르는 소리” 찬송가를 늘 함께 부르곤 하였다. 사애리시 선교사는 박한나 권사에게 올갠 연주법을 가르쳐 주었는데, 박한나 권사는 이 떄 배운 실력으로 이후에 교회에서 피아노 반주를 하였으며, 100세를 눈앞에 둔 지금도 몇 곡은 피아노 반주를 하며 찬송을 하면 함께 사는 사위가 놀라곤 한단다. 찬송가 559장 ‘사철에 봄바람 불어오며’ 와  304장 ‘어머니의 넓은 사랑’ 등 100여 곡 이상을 작곡하여 한국 찬송가의 개척자로 불리는  구두회 교수도 이 때 주일학교를 다니며 사애리시 선교사로부터 음악을 배웠다.

사애리시 선교사는 행방불명된 독립군 아버지를 둔 오애리시를 입양하여 키우며 박한나 권사와 함께 세브란스 간호학교에 입학하도록 주선하였다.  이들은 방학마다 공주에 내려와 사애리시 선교사님 댁에서 함께 생활하면서 인근지역에 사경회와 합창, 크리스마스 공연 등을 함께 다니며 전도하였다.

사애리시 선교사는 유관순을 데려다가 가르쳐 이화학당 3학년에 편입시켰다고 하였다.

 

사애리시 선교사를 남편 곁으로 !!

 

사애리시 선교사는 1871년 4월 11일 캐나다에서 출생하였으며, 1900~1940년 기간 동안 38년의 인생 황금기를 식민지 치하의 조선에서 선교사로 활동하였다. 1940년에 일제에 의해 강제 추방된 후 미국 캘리포니아주 파사데나의 은퇴선교사요양원에서 지내다가 1972년 9월 8일에 101세로영면하시어 파사데나의 품격 있는 납골묘원에 영구 안치되었다(Mountain View Mausoleum, Columbarium of Peace, Niche:00026 Row:PL2300, Morengo Ave., Pasadena, Los Angeles, CA).

130년 전에 조선 땅에 첫발을 내디디며 뿌린 선교사들의 주님의 사랑이 열매를 맺어 이제 한국은 전세계 171개국에 2만 7000 명 이상의 선교사를 파견한 선교대국이 되었다. 이 땅에 생명의 피를 바치기까지 주님의 사랑을 전한 선교사들의 업적을 기리고 복음전도의 전초기지 역할을 하였던 선교유적들을 온전하게 보전하여 선교정신과 함께 우리의 젊은이들과 후대에 전하는 일이야말로 주님께서 기뻐 받으실 우리의 과제일 것이다.

그 중에서도 충청지역 근대여성교육의 어머니이시며, 독립운동의 표상인 류관순에게 민족교육을 시킨 사애리시 선교사의 유골을 공주 영명동산에 잠들어 있는 그의 남편 묘소 옆으로 이장을 할 수 있다면 부부의 생전의 못다한 사랑의 아쉬움도 달래는 한편 우리의 후손들에게도 커다란 교육의 현장이 될 것이라 생각된다. 그분 인생의 거의 전부를 바친 충청도 공주로 사애리시 선교사님의 묘지이장이 전개되기를 바란다.

 

Mrs. Alice Hammond Sha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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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male

Age at death 101

Date of Death Septemebr 8, 1972, 9:05 PM (in Pasadena, Los Angeles, California)

Date of Birth April 11, 1871 (in Canada)

 

Last Occupation : Missionary, 39 year, United Methodist Church

Length of Stay in California : 33 years

Place of Death : 1435 N. Garfield Avenue, Pasadena, Los Angeles, California

Usual Residence : 275 Robincroft Drive, Pasadena, Los Angeles, California

 

Funeral : Cremation 9/15/72

Name of Cemetry : Mountain View Mausoleum, Columbarium of Peace, Niche:00026 Row:PL

2300, Morengo Ave., Pasadena, Losangeles, CA

 

Stay in Korea : 38 years (1900 ~ 1940)

1900~1903 : Seoul (Teacher in Ehwa School)

1904~1906 : Gongju (Myungsun Hakdang – 1st School for girls

in Chungcheong Province)

  1. 3. 5. : Death of her husband (Rev. Robert Sharp)

1906~1908 : USA (furlough)

1908~1940 : Gongju (Youngmyung Girls School)

 

Contact Person : Mr. Corky Colbert

(office 800-533-4826, cell 562-457-8889, corky@ApprovedForward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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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 공주 영명동산에 있는 선교사묘원. 사진 중간 좌측의 흰 비석이 사애리시 선교사의 남편 샤프 선교사의 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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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2> Sharp, Robert Arthur 선교사(1872-1906): Seoul, Kongju/19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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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3> 공주 영명동산에 있는 선교유적인 등록문화재 제233호 ‘공주 중학동 (구)선교사가옥’. 샤프목사가 설계하고 중국인 기술자가 시공한 것으로 목록화사업보고서에 기재되어 있다. 1928년부터 6년간 공주 영명여학교에서 사애리시 선교사로부터 배운 박한나 권사는 이 건물이 학교건물로 쓰였었다고 증언하고 있다.(사진:공주 중학동 구 선교사가옥 기록화 조사보고서,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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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4> Sharp, Alice Hammond (사에리시) 선교사(1871-1972): Seoul, Kongju/19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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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5> 사애리시 선교사의 애제자인 LA 거주 박한나 권사(중앙, 99세) 인터뷰 후 기념사진(2015.12.29.). 사진 우측이 첫째 딸 부부(허리훈 전직 대사), 좌측은 필자와 금번 사애리시 선교사 행적 추적에 그의 남편과 함께 큰 도움을 준 셋째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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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6> Mountain View Mausoleum in Pasadena, CA, where Mrs. Alice H. Sharp’s ashes were enshrin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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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7> Name “Alice H. Sharp” is clearly seen at the lowest part of the plate in the Mountain View Mausoleum in Pasadena, CA, where Mrs. Alice H. Sharp’s ashes were enshrin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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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8> Alice H. Sharp 선교사(1871-1972) 납골묘 헌 화 (2015.12.29.).

사애리시 선교사님에게는 7~80 년 만의 애제자의 첫 방문이었고, 그분 인생의 꽃다운 시기를 다 바친 충남 공주로부터의 첫 방문과 헌화이었다.image009

<Photo 9> Mrs. Alice H. Sharp’s Student Mrs. Hanna Park(99 years old) and her relatives and Prof. Mancheol Suh(Right) in front of the grave of Mrs. Sharp. Dr. Suh pushes the plan to move the grave of Mrs. Sharp to her husband’s tomb in Gongju, Korea. Mrs. Alice H. Sharp lived for 36 years in Gongju as a missionary even after her husband’s death during the missionary work. She is called as “Mother of modern education of woman” in Chungcheong Province,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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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10> Death certificate of Mrs. Alice H. Sha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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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act Person : Mr. Corky Colbe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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