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공주의 영명동산에는 110여 년 전 이 땅에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헌신적인 삶을 살다가 순교한 샤프(Sharp) 선교사를 비롯하여, 네명의 선교사 자녀들이 묻힌 아담한 선교사 묘지가 있다. 당시의 선교보고에 의하면 40〜50% 대의 영아사망율을 보이는 심각한 상황이었으므로 낯선 이국땅에 태어나 면역력이 없었던 선교사 자녀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두 살, 다섯살, 열 살의 짧은 생을 마감하고 이 땅에 여린 뼈를 묻은 애처로운 흔적이 자리하고 있다. 이중 특이한 무덤은 의사인 조지 윌리암스 박사(Dr. George Zur Williams, 한국명: 우광복)의 묘이다.
조지 윌리엄즈 박사는 한국에서 37년간 선교사로 사역하면서 공주의 영명중・고등학교를 일구어낸 프랭클린 윌리엄스(F.E.C. Williams, 한국명: 우리암) 선교사의 맏아들이다. 그는 1907년에 제물포항 부둣가 집에서 출생하여 14살까지 공주 영명학교에서 수학을 한 후에 고향인 콜로라도 덴버의 친할머니 밑에서 고등학교와 의과대학을 졸업하여 의사가 된 사람이다. 그는 1945년 8・15광복 후에 군정을 위해 진주하는 미군의 군의관으로 그가 태어난 한국을 다시 찾았다. 그의 말에 의하면 당시 미군 1만명 중에 한국말을 할 줄 아는 사람은 본인 밖에 없어 군의관임에도 불구하고 군정책임자인 하지(Hodge) 사령관의 특별보좌관으로 발탁되어 군정시기의 인사 및 정책수립에 깊숙이 관여하였다. 한국말과 영어 및 일본어에 능통했던 그는 미군정과 한국인들과의 가교역할을 하기 위하여 남한 전역을 돌며 여론조사를 하여 “당시 한국인들이 이승만을 ‘우리 대통령’이라 부르며 그의 귀국을 바라고 있다는 내용을 여러 차례 하지 사령관에게 보고했다”고 진술함으로서 해외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이승만으로 하여금 조기에 귀국하여 정치적 기반을 확보하는데 기여하였음을 알 수 있다.
한국정부 수립후에 미국으로 돌아간 조지 윌리엄스 박사는 의과대학 교수 및 보건연구기관장으로 기여를 하면서 많은 업적을 남겼다. 그중에 뛰어난 업적은 1930년대 중반에 흡연이 폐암을 일으키는 원인이 된다는 사실을 밝힌 점이다. 지금은 너무나 당연한 결과이지만 80년전인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연구결과이었다. 그것도 담배회사로부터 연구비 지원을 받아 이루어진 연구 결과이었다. 스폰서였던 담배회사에게는 절대적으로 불리한 연구결과임에도 불구하고 그대로 논문을 발표하였다는 점은 가습기 살균제의 독성문제로 충격을 받은 오늘의 한국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다.
그는 1994년에 87세로 부르심을 받으면서 어릴 때 뛰어놀던 한국의 그 공주영명동산, 열 살의 어린나이에 하늘나라로 보내고 평생 잊을 수 없던 누이동생이 묻혀있는 그 곳에 묻어달라고 유언을 하여 지금 공주영명동산의 선교사묘역에 잠들어 있다. 하루빨리 일제로부터 광복을 되찾으라고 아들의 이름까지도 ‘광복’이라 지었던 아버지 선교사의 한국사랑과 생을 마감하는 순간까지도 한국사랑을 실천한 그 아들의 마음을 다시 한번 되새겨본다.
서 만 철 (사단법인 한국선교유적연구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