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편지

우리 땅 ‘기독 문화유산’에도 관심 가져야

[칼럼]우리 땅 ‘기독 문화유산’에도 관심 가져야

유정서 | dongponews@hanmail.net

승인 2010.10.11 10:57:18
잡지, 출판인. 동국대 역사교육학과와 같은 대학 문화예술대학원에서 각각 한국사와 우리 문화재를 전공했다. 활발한 집필 활동을 통해 우리 역사와 문화재에 관한 많은 글과 저서를 펴냈다. 최근에는 기독교문화유산 답사를 통해 한국기독교사에 접근하는 방법을 모색한 책 <대한민국기독문화유산답사기>를 펴낸 바 있다.

 

몇 년 전, 유럽 출장길에 이탈리아 로마엘 들른 적이 있다. 여러 곳을 둘러보았지만, 기독교인인 내게 가장 큰 느낌을 주었던 곳은 로마시대의 지하 공동묘지 카타콤베(Catacomb)였다.

 

흡사 미로처럼 끝없이 이어진 카타콤베의 지하 골목을 걸어갈 때는 가슴 서늘한 전율마저 느꼈다. 서슬 시퍼런 로마 관헌의 눈을 피해 오직 하나님을 경배하기 위해 서로 손을 맞잡고 이 어두컴컴하고 으스스한 묘지를 찾아들었던 옛 사람의 순전한 신앙이 코끝이 찡할 만큼 감동적으로 가슴을 울렸기 때문이다.

 

당시 다니던 교회에서 주일학교 고등부 교사를 맡고 있던 나는 여행에서 돌아와 가르치던 아이들에게 공과공부 대신 그날의 느낌에 대해 열변을 토했던 기억이 난다. 몇 시간의 설교나 성경공부보다도 훨씬 많은 느낌과 깨우침을 준 놀라운 체험을 아이들과 공유하고 싶었던 까닭이다.

 

바로 이런 것이 성지나 유적을 답사하는 가장 큰 뜻이다. 유적이나 유물은 기록이 침묵하거나 말하지 못하는 것들을 가슴을 울리는 무언의 언어를 통해 이야기해 준다. 유적 중에서도 특별히 신의 성스러운 숨결이 서려있는 종교적 유적, 즉 성지(聖地)는 인간의 좁은 소견으로는 도저히 헤아리기 어려운 하나님의 원대한 계획과 하나님이 인간의 역사에 개입하는 방법을 새삼 깨닫게 해주는 ‘또 다른 성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많은 이들이 우리나라에는 기독교에 관련된 유적이나 성지가 거의 없다는 편견에 빠져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물론 기독교가 잉태하고 성장한 무대가 됐던 근동이나 유럽의 유서 깊은 도시들과는 비교할 수 없지만, 그래도 민족과 함께 고락을 같이하며 엮어온 이 땅의 역동적인 복음화 과정을 증언해 주는 소중한 흔적들은 적지 아니 남아있다.

 

다만 기독교 유적답사에 대한 열망이 높아지고 있는데 비해 답사의 코스나 방법, 지도지침 등 답사에 필요한 소프트웨어들이 충분히 개발되지 못했을 뿐이라고 본다.

 

우리나라 개신교의 역사도 이미 1백년을 넘어선 지 오래다. 뿐만 아니라 교세로 보아도 세계적인 기독교 국가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그러므로 이제는 이 땅에서 펼쳐지는 한 국 기독교의 역사가 곧 세계 기독교사의 중요한 부분이라는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

 

이런 점에서 이제는 성지 순례나 기독문화유산을 답사하기 위해서는 꼭 외국으로 떠나야 한다거나 외국의 성지와 기독교 유적만이 답사의 가치가 있다는 식의 편견은 버릴 때가 됐다.

 

오히려 이제까지 소홀히 생각했던 우리 기독문화유산에 대해 새롭게 관심을 갖고 세계 기독교 선교사에 유례없을 만큼 유니크하고 폭발적이었던 한국의 복음화 과정을 되돌아보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본다.

 

특히, 한국기독교의 역사는 비단 특정 종교의 역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격동의 우리 근대사와 보조를 같이한, 한국 근대사의 중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한국 근대사의 흐름을 이해하기 위한 필수적인 루트이기도 한 것이다.

 

해외 동포들 중에도 기독교인이 상당히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동포들이 고국에 왔을 때,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 우리 문화유산을 답사할 계획이 있다면 전통 문화유산뿐만 아니라 우리 땅에 남아있는 기독교의 성지와 문화유산도 함께 마주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우리나라의 기독교 문화유산은 전국적으로 분포되어 있지만, 서울에 왔을 때 가장 가깝고 둘러보기 쉬운 곳은 ‘덕수궁 돌담길’로 유명한 정동길 부근이다. 개화기의 이곳은 조선에 진출한 거의 모든 서구 열강의 공사관과 서양식 병원, 신식 학교, 그리고 서양인이 세운 교회가 가득 들어차 있고 파란 눈의 이방인이 거리를 활보하는, 그야말로 서양문물의 해방구 같은 곳이었다.

 

누군가의 노래 가사처럼 거의 대부분이 ‘이젠 모두 세월 따라 흔적도 없이 변해 갔지만’ 지금도 이곳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감리교회인 정동제일교회, 최초의 신식학교인 배재학당과 이화학당의 옛 흔적, 구세군 회관 등 중요한 기독교 관련 유적들이 적지 아니 남아있다.

 

무릇 역사적 흔적들은 결코 먼저 말하지 않는다. 우리가 먼저 관심을 갖고 말을 걸고, 그들의 숨결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때서야 그들의 말을 들을 수 있다. 한국 땅을 밟은 동포들이 우리의 찬란한 문화유산은 물론 기독교문화유산에도 관심을 가져주었으면 좋겠다.< 저작권자 © 재외동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