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방-숭고한 희생으로 꽃피운 ‘충남 공주 기독교 역사’
2015.06.14|제 1114호
선교사 가옥, 선교사 자녀들 묘, 공주제일교회를 가다
서울에서 차로 2시간 거리를 달려 도착했다. 여기는 충남 공주다. 공주에도 선교사들의 숭고한 희생으로 꽃피운 기독교 역사가 있다. 그 귀한 역사를 만났다.
먼저 마주한 곳은 선교사 가옥(공주시 중학동 9-1, 등록문화재 제233호)이다. 선교사 가옥을 찾기 위해 주소를 들고 마냥 걸었다. 적힌 주소대로 찾아 왔는데 웬일인지 선교사 가옥이 보이지 않았다. 계속 주위를 둘러보다 채소를 다듬고 있는 할머니께 선교사 가옥을 어디 있냐고 여쭸다. 주름진 손으로 야산을 가리키셨다. 산 중턱에 건물이 있는데 그곳이 선교사 가옥이라고 하셨다.
아스팔트길을 벗어나 산길을 조금 오르자 3층짜리 붉은 벽돌 건물이 보였다. 산 속에 자리 잡고 있는 건물이 제법 고풍스러워보였다. 공주 시내도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이 건물은 공주 최초의 서양식 주거용 건물로 추정하고 있다. 이곳은 미국 감리회 소속 샤프(Robert Arthur Sharp)와 엘리스 하몬드(Alice J. Hammond) 선교사 부부의 사택이었다.
그들이 공주에 작은 초가집에서 터전을 마련하고 살았다고 한다. 엘리스 선교사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기록했다.
“여름 내내 우리는 돌 두 개 사이에 솥을 놓고 불을 지피는 작은 한국식 집에서 살았다. 그리고 우리의 침실은 너무나 지붕이 낮아서 일어설 때면 항상 머리를 부딪칠 걱정을 하였다”
그들은 새로운 보금자리를 만들기로 결정했다. 샤프 선교사가 직접 설계했다. 그런데 집을 짓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었다. 엘리스 선교사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회고했다.
“이 집에 사용되는 모든 것은 즉석에서 만들어졌다. 심지어 벽돌도 직접 구했고, 나무도 우리의 감독 하에 마련되었다. 남편은 수 마일을 가서 나무를 구해왔고, 한번은 작은 말을 타고 급류를 건너다가 하마터면 죽을 뻔 했다. (중략) 우리는 유리를 잘라서 거의 모든 창에 끼웠고, 페인트칠, 기름칠, 광내기를 손수 했다.”(Korea Mission Field 7월호)
샤프와 엘리스 하몬드 선교사는 손수 집을 짓고 본격적으로 공주에서 선교활동을 시작했다. 남학교인 명설학당과 여학교인 명선학당을 설립했다. 이 두 학교를 모태로 훗날 윌리엄스(Frank E. C. Williams)선교사가 영명학교를 세웠다.
엘리스 선교사는 1913년 천안 지역으로 전도를 떠났다. 그곳에서 12살 소녀를 만났다. 엘리스 선교사는 크리스천이던 그 소녀의 부모에게 교육을 맡겠다고 했다. 그 소녀를 양녀 삼아 공주로 데려왔다. 그 소녀는 1919년 3.1만세운동에 동참하고, 3.5학생만세운동과 4월 1일 천안 아우내장터 만세운동을 주도한 유관순이다.
공주 선교사 가옥이 바로 엘리스 선교사가 유관순을 데려와 같이 생활하던 곳이다. 엘리스 선교사는 1915년 유관순을 이화학당으로 유학을 보내 민족의 등불로 키워냈다. 유관순뿐만 아니라 40여 명의 선교사들이 이 사택을 거쳐 갔다고 한다. 현재 이 선교사 가옥은 개인 소유다.
펴보지도 못하고 져버린 선교사 자녀들
선교사 가옥에서 산으로 난 길을 따라 가면 선교사 묘지가 있다. 자그마한 5개의 무덤과 묘비가 있다.
선교사 가옥을 지은 샤프 선교사의 묘지도 있다. 샤프 선교사는 사경회를 인도하기 위해 논산 은진으로 갔다가 이질에 걸려 손도 써보지 못하고 소천했다. 그의 나이 34세였다. 길을 가다 진눈깨비를 피해 들어간 집이 하필 상여를 보관하는 곳간이었다. 그곳에서 이질로 죽은 시체를 담았던 상여를 만졌다가 감염되었다.
테일러 선교사의 딸 에스터(Ester M. Tayior, 1911~1916), 윌리엄스 선교사의 아들 조지(George Z. Williams, 우광복, 1907~1994), 딸 올리브(Olive Williams, 1909~1919), 아멘트 선교사의 아들 로저(Roger Amendt, 1927~1929)의 무덤도 있다. 조지 윌리엄스(우광복)를 제외하면 모두 어린이들의 묘다. 무덤 주변은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지만 왠지 모를 쓸쓸함이 느껴졌다. 척박한 선교지에서 피어보지도 못하고 져버린 아이들의 삶이 가여웠다. 그곳에 서서 그들을 위해 기도했다.
조지 윌리엄스의 무덤에는 특별한 사연이 있다. 그의 한국 이름은 우광복이다. 영명학교 교장이었던 아버지 윌리엄스 선교사가 대한민국의 광복을 염원하며 지어준 이름이다. 그의 아버지가 한국을 얼마나 사랑했는지를 알 수 있다. 우광복은 미해군 중령(군의관)으로 6.25에 참전하였다. 미군 중장의 통역관으로 한미동맹과 정부수립에 기여했다. 그는 87세에 사망했는데 공주에 있는 여동생 곁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살아 숨 쉬는 공주를 만나다
발걸음을 옮겨 공주제일교회(공주시 봉황동 10번지)로 향했다. 공주제일교회도 붉은 벽돌로 만들어진 건물이다. 공주제일교회 구 건물은 ‘기독교박물관’으로 운영되고 왼편에 있는 신 건물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다.
의료선교사 맥길(William B. McGill)은 이용주와 함께 1903년 7월 공주에 도착했다. 그들은 공주에 교회를 세우기 위해 노력했다. 마침내 공주읍교회(공주제일교회)를 세웠다. 그들은 초가집에서 예배드리며 신앙을 키워갔다. 1930년 공주의 중심지에 예배당을 짓고 이전했다. 그런데 6.25 전쟁 당시 폭격으로 파괴되었고, 1956년 재건했다.
공주제일교회 기독교박물관(화, 목 10〜16시)에 가면 공주 기독교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다. 1층은 ‘나눔의 순례길’이다. 6개의 기도방과 가상 선교사 체험을 할 수 있는 3D 모션 가상현실 공간이 마련돼 있다. 2층은 ‘복음의 역사길’이다. 사진과 유물 등 역사자료가 전시되어 있고,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도 있다. 벽면에는 한국 스테인드글라스의 개척자인 고 이남규 선생이 만든 초기 작품이 걸려 있다. 아름다운 스테인드글라스를 보는 것도 박물관 견학의 백미다.
이외에도 공주에는 다양한 볼거리가 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앞두고 있는 ‘송산리고분군’과 ‘공주성’, 백제 문화유산의 보고 ‘국립공주박물관’, 1894년 동학농민군이 관군과 일본군을 상대로 최후의 전투를 벌였던 ‘우금치전적지’, 갑신정변의 주인공 ‘김옥균 생가 터’, 천주교 100년 박해의 현장 ‘황새바위성지’ 등이 있다.
송산리고분군(충남 공주시 금성동 산5-1)은 꼭 방문해보기를 추천한다. 1971년 7월 5일 송산리 제5, 6호 고분의 침수방지를 위한 배수로 공사를 하던 중 우연히 발굴된 웅진백제시대의 고분이다. 이것이 바로 무령왕릉이다. 지석이 이 무덤의 주인공이 무령왕이라는 사실을 명백하게 기록하고 있어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삼국시대 왕릉 중 신원을 알 수 있는 유일한 무덤이다. 총 108종 4,600여 점의 유물이 출토되어 백제문화 연구에 큰 공헌을 했다. 송산리고분군을 따라 걷는 오솔길도 참 좋다.
식도락여행 또한 빼놓을 수 없다. 공주시는 ‘으뜸공주맛집’이라는 71개 음식점을 선정했다. 공주시 소재 일반음식점으로 2년 이상, 동일한 메뉴로 영업을 하고 있는 음식점들이다. 프랜차이즈 음식점은 제외됐다. 엄격한 심사를 거쳐 선정된 곳에서 공주의 맛과 멋을 만끽할 것을 추천한다.
/ 김현준 기자 khj@onnuri.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