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찬송가의 개척자 작곡자 구두회 찬양 그리고 CCM / Christianity
2005.04.23. 11:48
복사 http://blog.naver.com/blueb01/60012129594
전용뷰어 보기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blueb01&logNo=60012129594
어머니는 한국인에게 영원한 정신의 바탕이며 정서의 중심입니다.
최근 탤런트 고두심이 주연한 영화 ‘엄마’에서 딸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어지럼증이 있는 엄마는 해남에서 목포까지 꼬박 3박 4일의 도보 여행을 하게 됩니다. 여행의 과정에서 보여주는 딸에 대한 애정을 진한 감동과 함께 잔잔하게 보여주는 우리의 엄마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어찌보면 뻔한 줄거리로 보이지만 이렇게 어머니의 추억은 항상 우리의 몸 속에 웅크리고 있다가 불쑥 가슴으로 이동해 텅빈 마음을 위로와 사랑으로 가득 채워주곤 합니다.
찬송가 304장 ‘어머니의 넓은 사랑’은 시인 주요한이 잠언서의 말씀을 토대로 작사하고 구두회가 작곡한 토종 찬송가입니다. 찬송가 중에서 어머니의 사랑을 표현한 유일한 찬송가이기도 합니다. 손 때 묻은 성경책을 읽어 주시고 나를 위해 기도하시는 어머니의 모습을 잔잔하게 그린 가사이며 찬양입니다. 멜로디는 단순하면서 아름답고 쉽기 때문에 누구라도 한번만 들으면 외워서 부를 수 있습니다.
이렇게 향파 구두회는 많은 찬송가를 작곡하였으며 누구라도 쉽게 찬송가를 부를 수 있도록 간단하고 아름답고 자연스러운 가락으로 기독교 전파에 크게 기여하였으며 음악 학도를 위한 많은 음악 이론서를 편찬한 작곡가입니다.
구두회의 음악통론’과 ‘화성악이론’, ‘대위법연구’ 등은 작곡에 입문하는 사람에게 필수 교과서였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부르는 서양에서 만들어진 찬송가를 우리의 것으로 해석하고 만들어 보급한 한국 기독교 음악의 창시자입니다. 찬송가 305장, 571장, 583장, 594장, 602장, 613장, 634장을 작곡하였으며 여러 권의 ‘성가합창곡집’ 등의 작품이 있습니다. 기독교음악 공부를 위하여 ‘작곡모음집’과 ‘찬송가 다루기와 강해’라는 책도 출간하였습니다.
구두회는 동경 유학생활을 마치고 귀국한 1960년부터 숙명 여대에서 시간 강사를 시작으로 하여 음대 학장에 오르고 1986년 정년 퇴임할 때까지 많은 후진을 양성합니다. 독실한 신앙을 가진 향파는 찬송가를 만들고 음악 이론서를 저술한 것 외에도 많은 활동을 통해 복음을 전파하였습니다. YMCA와 YWCA를 중심으로 기독교 청년 활동과 문화를 일구어 내기도 하였으며 숙명여대 선교회 ‘글로리아’를 창단하여 대학의 신앙 활동 모태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평양요한신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하던 시절 같은 교회에서 지휘자와 반주자로 만난 부인과 7년의 연애 끝에 결혼에 이르게 됩니다. 2남 1녀의 자녀를 두었으며 딸은 줄리아드 음대에서 바이올린을 전공하고 현재 미국 메트로폴리탄오페라단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있으며 두 아들은 KAIST와 한양대에서 교수를 하고 있습니다.
항상 교회와 학교 그리고 사회활동을 통해 봉사하고 복음을 전파하여 경제적으로 그리 여유는 없었지만 하나님을 자녀를 통하여 축복하셨습니다.
구두회의 작곡 이론서는 우리나라에서 김성태의 작곡 이론서에 이어 대학에서 가장 많이 채택되고 작곡을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읽혀진 책입니다. 김성태의 화성악이 일본의 이론서를 한국어로 번역한 정통 클래식 학도를 위한 책이라면 구두회의 음악 이론서는 한자에 익숙하지 않고 클래식을 전공하지 않는 음악에 취미가 있는 일반인도 쉽게 읽을 수 있도록 만들어져 학생들에게 인기가 높았으며 지금도 여전히 가장 많이 팔리는 음악 입문서이기도 합니다.
찬송가에서 한국인 작곡가에 의해 만들어진 곡은 27편이며 박재훈, 나운영 그리고 구두회의 작곡으로 되어 있습니다. 한국 기독교의 역사가 길지 않은 것에 비해 찬송가와 성가곡집 등 작품이 풍부하게 소개되어 있으며 교회음악의 학문이 일찍부터 자리잡고 교회 지휘자와 반주자 그리고 기독교 음악인을 양성하며 오늘날 CCM의 토대를 이룬 것은 구두회의 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지금도 향파는 결혼 60주년 회혼식 기념으로 ‘음악신학’이라는 제목으로 교회음악 이론서를 집필하고 있으며 교회음악이론을 집대성하는 책을 기획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교회 음악이론서와 성가곡 들에도 불구하고 오라토리오 등 정통 교회음악의 활동이 빈약하고 대중음악과 현대음악으로 주류가 바뀐 것은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아직도 교회음악이 예배와 교회의 액세서리 정도로 종교계 지도자들이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정통 교회 합창음악과 성가 음악의 발전이 위축 받은 것은 아닌지 토론이 필요한 부분입니다.
적지 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왕성한 학문 연구와 후진 양성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음악으로 전파하려는 그의 아름다운 노력에 찬사와 찬양을 보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음악에 대한 열정과 재능은 하나님이 그에게 주신 가장 크고 훌륭한 선물이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음악을 공부하는 모든 사람의 머리와 마음 속에 구두회의 이름과 구두회의 이야기는 두고 두고 남아 계속하여 후배들에게 재생산될 것입니다.
* 글 : 유현철(윌시스 대표, 사랑의교회 집사)
[출처] 한국 찬송가의 개척자 작곡자 구두회|작성자 Daniel J
http://blog.daum.net/osowny/15971074
559장/ 사철에 봄바람 불어 잇고
(전영택 작사 · 구두회 작곡) ;
《통일 찬송가,1983)》305장
작곡자 구두회 장로
구두회 장로는 충남 공주읍 출생이다. 미국 보스톤 음악대학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캘리포니아 신학대학원에서 음악박사 학위를 받았고, 미드웨스트대학에서 교회 음악박사를 받았다. 숙명여대 음악대학 교수, 대학원장을 역임한 그는 찬송가 위원회(공회) 감리교측 위원 등을 역임했다. 현재 남산감리교회 원로장로이다.
*****************************************************************************
http://tip.daum.net/question/106588/72687025?q=%EB%8C%80%ED%95%99%EA%B5%90%EC%88%98+%EA%B5%AC%EB%91%90%ED%9A%8C
충남 공주 태생(1921~)인 구 두회 교수님은 평양요한학교에서 공부하였고 이때 요한학교에서 선배인 고 이유선(李宥善)박사와 동기생인 박재훈(朴在勳)목사님을 만나 평생 교회음악의 동료로 지내며 한국교회음악계에 큰 공헌을 하신 분입니다.
이 후 박재훈 목사님과 함께 일본 동경제국고등음악학교에서 공부하였고, 미국 보스턴 음악대학에 유학하여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대전사범학교, 배재고등학교 등 여러 학교 교사를 거쳐 숙명여대 교수로 학장을 역임하였습니다.
교회음악협회 회장, 한국음악협회 회장을 지내셨고, ‘찬송가 다루기와 그 강해’, ‘화성학 연구’, ‘대위법 연구’, 가곡집, 성가합창곡집 등 저서도 여러 권 남겼습니다. 찬송가로는 ‘어머니의 넓은 사랑’(579장)과 ‘사철에 봄바람 불어 잇고’(559장) 두 장이 나란히 수록되어 교회에서 애창되고 있습니다.
http://cafe.daum.net/musicgarden/5UDJ/25587?q=%B4%EB%C7%D0%B1%B3%BC%F6%20%B1%B8%B5%CE%C8%B8&re=1
향파 구두회선생의 思友月
香坡 具斗會 (1927.8.3~ )선생은 충남 공주 태생입니다.
평양 요한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하다가 차츰 음악에 눈을 뜨게 되
어 도쿄제국음악학교에 입학하였으나 전쟁으로 졸업하지 못하고
귀국하여 평양에서 교원양성소를 수료하고 보통학교 교사가 된후
46∼54년 대전사범학교, 54∼57년 배재고등학교의 음악교사를
지낸후 또 국학대학 문학부를 졸업하였습니다. 그후 숙명여대 음
대교수가 되어 이곳에만 줄곧 26년간 재직하고 그 대학 학장으로
1986년에 정년퇴직하였습니다.
퇴직하면서 <가곡집 사우월>을 출판하고, 세종문화회관 소강당에
서 첫 작곡발표회를 가졌습니다. 이때 발표된 곡은 < 길, 넝쿨타령,
(김소월詩), 머들령(정훈), 그이가 오신다기에(모윤숙), 순이 무덤
(강소천), 또 한송이 나의 모란(김용호)> 등 대표곡 19곡이었습니다.
그의 작곡은 19세부터 습작을 거친 후 도쿄 유학시절에 <봄 바람>
등 동요 몇곡을 지은데서 시작하여, 선생의 전체작품은 동요 수십곡
과 예술가곡 !00여곡, 성가 독창곡 100여곡, 성가합창곡 100여곡이
있으며 기악곡으로 소나타, 교향곡, 서곡, 조곡 등이 다수 있습니다.
그리고 성가외에도 민족감정과 리듬을 살리는 민요의 현대화 작업
의 일환으로 <새타령, 신풍년가> 등을 작곡했습니다.
또 선생은 오랜 교직생활을 통하여 화성악 연구, 대위법 연구,
작곡기법 연구 등 많은 음악-작곡관계 저서를 가지고 있습니다.
향파 선생하면 먼저 떠오르는 노래가 사우월(思友月)입니다.
평양신학교를 나온 그는 음악가로의 꿈을 이루기 위해 일본에
유학중 2차 대전 말 유학생에 대한 징집을 피해 평양으로 가서
보통학교 교사가 되었는데 당시 다니던 교회의 성가대 지휘자와
반주자로서 만나 뒤에 부인이 된 김경환여사와 연애할 당시
공중에 떠있는 밝은 달을 보고 연인을 그리는 세레나데로 손수
작시까지 하여 작곡한 노래로 데뷔곡이기도 합니다.
나는 이 노래를 들으면 우리 옛 시가문의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이 먼저 떠오릅니다.
수양대군이 어머니 소현왕후 沈氏의 죽음을 당하여 명복을 빌고
백성들이 불문에 귀의하도록 바란 강설문 석보상절을 지으니
이를 보고 아버지 세종이 노래로 만든 가창곡입니다. 하나의 달이
수많은 千江에 비치듯 부처의 덕이 뭇 중생에게 두루 미칩니다.
향파선생의 시와 노래는 중생을 차별없이 두루 비쳐주는 달님이
자기와 연인을 비추어 자기의 사랑을 연인에게 보여주고, 연인의
사랑도 비춰 보여주기를 바라는 애끓는 심정을 나타내었습니다.
이 노래는 해방후 1947년 국민음악연구회 주최 예술가곡 공모에
당선되어 이어서 중-고등학교 교과서에도 수록되었습니다.
그런데도 공교롭게도 아동문학가인 이주홍(李周洪) 님도 아호가
향파여서 작사자를 왕왕 이 두분을 혼동하지만
이분은 호가 向破로서 香坡 구두회선생과는 구별해야 합니다.
구두회 선생과 부인 김경환여사 사이에 2남 1녀가 있으며
김경환 여사는 동갑으로, 일본 동양음악 출신의 피아니스트로
서 서울 YMCA 이사 등 사회활동을 많이 하였지만 무엇보다도
고마운, 가난한 선비의 음악적 동지였으며 응원자였습니다.
민족적 정서가 남달리 강하여 한복을 즐겨 입는
향파 구두회 선생은 현재 생존 음악가로서 가장 년장 원로이며
그 다음을 최영섭선생, 윤해중선생, 오동일선생이 잇고 있습니다.
인물
구두회 전 대학교수, 전 작곡가
출생 1921년, 충남 공주
소속 전 숙명여자대학교 음악대 교수
학력 미드웨스턴주립대학교
조인스 (2011.11.08)
도움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