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기독교 유적 세계문화유산 등재 추진|지금 선교지에서..
섬김이|조회 2|추천 0|2014.07.15. 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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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기독교 유적 세계문화유산 등재 추진
일본정부는 나가사키현과 구마모토현에 산재한 기독교 유산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후보로 추천하기로 했다고 일본 언론이 11일 보도했다. 일본 문화심의회 특별위원회는 10일 2016년 세계문화유산 등록 후보로 ‘나가사키의 교회군과 기독교 관련 유산’을 유네스코에 추천하기로 결정했다. 등록 여부는 2016년 여름께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결정된다. 나가사키 교회군에는 일본 내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기독교 교회인 오우라 천주당(1865년 건립, 나가사키시 소재), 기독교가 금지됐던 시절 신앙을 지킨 신도들이 살았던 아마쿠사의 사키쓰마을(구마모토현 아마쿠사시) 등이 포함돼 있다.
日 ‘초기 교회 유적’ 내년 유네스코 세계유산 신청… 한국 한옥 교회 등재 악재로
비슷한 유산 중복 꺼려
입력 2015-07-03 02:39 국민일보
일본이 내년 터키에서 열리는 제40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 ‘나가사키 지역 교회와 기독교 관련 유적’을 세계유산으로 등재 신청한 것으로 밝혀졌다. 조선말∼일제강점기에 지어진 전국의 한옥교회를 묶어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려던 우리로선 악재를 만난 셈이다. 유네스코는 성격이 비슷한 유산을 세계유산으로 중복 등재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
2일(현지시간) 독일 본에서 제39차 회의를 열고 있는 세계유산위원회에 따르면, 일본은 16세기 중반 기독교가 일본 땅에 처음 도착한 이후 지어진 규슈와 나가사키 일대의 초기 교회 관련 유적 13건을 묶어 ‘Churches and Christian Sites in Nagasaki(나가사키에 있는 교회와 기독교 유적들)’라는 이름으로 내년 세계유산 등재를 신청했다.
여기에는 오우라천주당(大浦天主堂)과 관련시설, 시쓰교회당(出津敎會堂)과 관련시설, 오노교회당(大野敎會堂), 히노에죠성(日野江城) 유적 등이 포함됐다. 일본은 이들 유산의 세계유산 등재를 2007년부터 준비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은 2009년 세계유산 잠정목록 재검토 용역을 하면서 향후 등재 가능성이 있는 유산으로 강화의 강화성당과 익산의 나바위성당, 진천성당, 고양 행주성당, 안성 구포동성당, 청주 성공회성당, 정읍 천주교신성공소(新成公所), 원주 대안리공소, 서산 상홍리공소 등을 비롯한 한옥교회를 지목한 바 있다. 천주교가 한반도에 상륙한 조선시대 말기 이래 일제 강점기에 이르는 기간에 세워진 한옥교회들은 동서 문화를 융합한 세계적으로 보기 드문 문화유산으로 평가된다.
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
日, 나가사키 기독교유적 세계유산등재 추진
일본이 세계유산등재 추천 결정한 기독교유적
(교도=연합뉴스) 일본 정부는 나가사키(長崎)현과 구마모토(熊本)현에 산재한 기독교 유산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후보로 추천하기로 10일 결정했다. 사진은 17세기 일본에서 기독교 금지령이 내려진 이후 주민들이 200년 이상 몰래 신앙생활을 한 아마쿠사(天草)의 사키쓰(崎津)마을(구마모토현 아마쿠사시) 유적이다.
(도쿄=연합뉴스) 조준형 특파원 = 일본 정부는 나가사키(長崎)현과 구마모토(熊本)현에 산재한 기독교 유산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후보로 추천하기로 했다고 일본 언론이 11일 보도했다.
일본 문화심의회 특별위원회는 10일 2016년 세계문화유산 등록 후보로 ‘나가사키의 교회군(群)과 기독교 관련 유산’을 유네스코에 추천하기로 결정했다. 등록 여부는 2016년 여름께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결정된다.
나가사키 교회군에는 일본 내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기독교 교회인 오우라(大浦) 천주당(1865년 건립, 나가사키시 소재), 기독교가 금지됐던 시절 신앙을 지킨 신도들이 살았던 아마쿠사(天草)의 사키쓰(崎津)마을(구마모토현 아마쿠사시) 등이 포함돼 있다.
한국 한옥교회 세계유산 등재신청에 ‘재뿌린’ 일본
일본이 초기 교회 관련 유적 13건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 신청, 조선말~식민강점기 한옥교회를 묶어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하려는 한국의 노력에 찬물을 끼얹을 것으로 전망된다.
2일(현지시간) 독일 본에서 제39차 회의를 개최 중인 세계유산위원회에 따르면 일본은 내년 터키에서 열릴 제40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 ‘나가사키 지역 교회와 기독교 관련 유적’을 세계유산으로 등재 신청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는 조선말~식민강점기 한옥교회를 묶어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하려는 우리측 움직임에 악재로 작용할 전망이다. 유네스코는 성격이 비슷한 유산을 좀처럼 같은 세계유산으로 중복 등재는 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
일본은 16세기 중반 기독교가 일본 열도에 처음 도래한 이래, 특히 에도시대 유일한 서양과의 교섭창구였던 규슈 나가사키 일대에 남은 초기 교회 관련 유적 13건을 한데 묶어 ‘Churches and Christian Sites in Nagasaki’라는 이름으로 내년 세계유산 등재를 신청했다.
이를 앞두고 홍보사업 일환으로 일본 측에서는 이번 세계유산위가 열리는 월드컨퍼런스센터 현장에 영문으로 작성한 관련 홍보물과 영상물을 무료로 비치했다.
일본은 이들 유산의 세계유산 등재를 위해 2007년 11월12일 추진회의를 처음으로 개최한 이래 본격적인 준비활동을 벌였다.
이와 같은 일본측의 움직임은 비슷한 논리 혹은 가치를 내세워 한옥교회의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하려는 우리 측 움직임에 일정한 타격을 줄지도 모른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코모스(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 한국위원회 사무총장인 최재헌 건국대 지리학과 교수는 “일본이 치고 나가는 바람에 우리로서는 골치 아파졌다”면서 “일본이 등재를 추진하는 나가사키 지역 초기교회와 우리의 한옥교회가 다른 점이 많다고 해도 우리가 취할 운신의 폭이 좁아진 것만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한국은 2009년 세계유산 잠정목록 재검토 용역을 하면서 향후 가능성 있는 유산으로 강화의 강화성당과 익산의 나바위성당, 진천성당, 고양 행주성당, 안성 구포동성당, 청주 성공회성당, 정읍 천주교신성공소, 원주 대안리공소, 서산 상홍리공소를 비롯한 한옥교회를 이미 지목했다는 점에서 더욱 아쉬움을 준다.
이들 한옥교회는 동서 문화를 융합한 세계적으로 보기 드문 문화유산으로 꼽히기도 했다. 이들 교회는 대부분 서양 선교사 지도로 한국인 전통 목수가 지은 것들이다.
김태희 선임기자 thkim@kmib.co.kr김태희 선임기자 thkim@kmib.co.kr
https://www.pref.nagasaki.jp/s_isan/kr/assets/
나가사키 교회군과 기독교 관련 유산
#001 오우라천주당 (大浦天主堂)
[1864년 건설 / 국보 ]
주소 : 長崎市南山手5-3 / TEL : 095-823-2934
현존하는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당건축.
교회건축으로서는 유일하게 국보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니시자카언덕에서 순교한 26성인을 기리기 위해 지어진 신도발견무대로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곳입니다.
# 002 시츠교회당과 관련유적 (出津教会堂と関連遺跡)
구 시츠구조원의 세가지요소로 구성된다.
시츠교회당은 드로신부의 설계와 지도에 의해 세워진 교회로, 처음에는 현재의 절반정도의 규모였지만,
1909년에 두번째 증축으로 정문부에 사각형의 종탑등이 건립되었습니다.
소토메지역의 강품을 고려하여 낮은 외관과 내부공간이 특징입니다.
창건에서 증축까지 일관데게 드로신부가 관여한 교회입니다.
#003 오노교회당(大野教会堂)
[1893년건설 / 국가지정 중요문화재]
주소 : 長崎市下大野町2624 / TEL 0959-25-0012(시츠교회)
드로신부 설계 및 지도로 시츠교회의 순례교회로서 건설되어졌습니다.
현무암을 외벽으로 한 일본식 기외지붕 건물입니다.
적토를 물에 녹인 탁핵으로 모래와 석회를 섞어 석재를 쌓는등 성도들의 봉사로 완성이 된 건물입니다.
#004 히노에성터(日野江城跡)
[국가지정사적]
주소 : 南島原市北有馬町谷川名 TEL 050-3381-5083(미나미시마바라시 교육위원회 문화재과)
히젠서부에서 가장 큰 세력이 있었던 크리스찬 다이묘 아리마시(有馬氏)의 거성터에서, 발굴 조사를 통해 계단, 돌담이 확인되었습니다.
죠카(城下)에는 아리마세미나리요가 있어, 텐죠켄오우소년사절도 라틴어와 음악을 거기서 배웠습니다.
나가사키 마을에 늘어선 크리스찬 문화가 번창한 곳이기도 합니다.
#005 하라죠아토 (原城跡)
[국가지정사적]주소 : 南島原市南有馬町大江名 / TEL 050-3381-5083(미나미시마바라시 교육위원회 문화재과)
아리마시의 외성에서 1637년 ~1638년 시마바라의 난에서 잇키군(一揆軍) 약 3만 7천명이 농성하고 전멸했습니다.
발굴조사에서 다수의 인골과 십자가, 메다이등의 유품이 출토함과 동시에 철저하게 파괴가 되었습니다.
아리아케해에 면해 있는 곶에 세워진 웅대한 히라야마성 유적입니다.
#006 쿠로시마 천주당(黒島天主堂)
[1902년 건설 / 국가지정 중요 문화재]
주소 : 佐世保市黒島町3333 / TEL 0956-56-2017
마루만신부의 지도에 의해 건축된 내부3층구조의 본격적인 교회당.
제단 바닥에는 아리타산 도자기 타일을 붙이는 등 지역적인 특색도 있습니다.
쿠로시마는 쿠쥬쿠시마에서 가장 큰 섬으로 금교 아래 이키츠키,고토 등에서 다수의 신자가 옮겨 잠복했었다고 합니다.
#007 타비라 천주당 (田平天主堂)
[1917년 건설 / 국가지정 중요 문화재]
주소 : 平戸市田平町小手田免19 / TEL 0950-57-0254
철강 설계, 시공에 의한 중층 지붕 구성 교회당.
팔각형 돔 지붕을 얹은 종탑이 있고 다채로운 벽돌쌓기 수법을 구사한 화려한 디테일도 디자인적으로 뛰어납니다.
세토(瀬戸)가 내려다 보이는 고지대에 위치하여 묘지등 주위의 역사적 경관이 좋습니다.
#008 히라도시마의 성지과 집락(平戸島の聖地と集落)
[중요문화적 경관]
주소 : 長崎県平戸市
금교시대에 조상의 순교지나 야스만다케(安満岳), 나카에노시마(中江ノ島) 등이 히라도의 잠복 크리스찬에 의해 성지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교회당 대신 성지를 숭배함으로서 신앙을 지키고 전해왔습니다.
이 성지는 지금도 숭배되고 금교시대의 독특한 경관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009 구 노쿠비교회당과 관련유적(旧野首教会堂と関連遺跡)
[중요문화적 경관]
주소 : 小値賀町野崎郷野首 /TEL 0959-56-3111(오치가치쵸 상공관광과)
노자키시마(野崎島)에 있는 野首集落跡, 舟森集落跡,里道의 3가지 요소로 구성됩니다.
노쿠비집락터에 세워진 노쿠비교회당은 최초의 벽돌로 만들어진 교회당입니다.
일본인 목수들의 벽돌 기술 습득 과정을 보여주는 점에서 매우 귀중합니다.
신자의 집단 낙도에 의해 폐당화하고 있던 것을 복원한 것으로 전면 지붕위의 서구 요새같은 장식이 특징입니다.
#010 카시라가시마 천주당(頭ヶ島天主堂)
[1919년 건설 / 국가지정중요문화재]
주소 : 新上五島町友住郷頭ヶ島638 / TEL 0959-42-0221(타이노우라교회 /鯛ノ浦教会)
중후한 로마네스크풍의 교회당입니다.
일본에서는 드문 석조교회당으로 1개의 돌을 4~5명이서 운반해, 하루에 2개~3개씩 나르고 쌓았다고합니다.
중후한 외간으로 내관의 조형은 꽃장식으로 장식된 독특한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출처][나가사키] 나가사키 교회군과 기독교 관련 유산(長崎の教会群とキリスト教関連遺産)|작성자타비짱
트래블로그/일본 트래블로그2009/04/28 10:50 http://tomomo.tistory.com/114
우리나라보다 먼저 기독교를 받아들였음에도 불구하고 기독교 신자의 수는 전체인구의1%도 되지 않는 나라가 일본이다. 채 200년이 안 되는 짧은 역사를 가진 우리나라 기독교가 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를 짓고, 가장 열성적인 신자를 가진데 비해 일본의 기독교는 신기하리만치 인기가 없다. 그러나 일본에도 기독교 문화가 융성하던 시기가 있었다. 에도시대의 정책적인 기독교 말살로 인해 지금은 희미한 기억으로만 남아있을 뿐이지만 분명 일본에도 기독교 문화는 존재했고 지금도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규슈에 있는 나가사키현은 일본 기독교의 발상지라고 할 수 있다. 16세기 대항해 시대에 서양 무역선이 가장 먼저 닿았던 곳이 나가사키의 히라도였고 이들을 따라온 선교사들이 나가사키를 중심으로 포교활동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특히 예수회라 이름지은 카톨릭 선교 단체는 신교인 프로테스탄트가 퍼져가는 유럽 대신 동남아 식민지라는 새로운 선교 시장에 눈독을 들이고 있었다. 그래서 일본에 도착한 예수회 선교사들은 나가사키 지역을 거점으로 해 일본 열도 전체를 카톨릭 신자의 나라로 만든다는 원대한 구상을 하고 있었다. 나가사키에서 시작된 선교활동은 효과를 거두어 짧은 세월 동안 규슈 전체에 걸쳐 30만 명이라는 신자를 확보하게 된다.
인도와 마카오를 거쳐 일본에 닿았던 프란시스코 자비에르. 아시아 기독교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
유독 규슈를 중심으로 기독교가 발전했던 또 하나의 이유는 규슈의 중심지였던 히고(肥後. 지금의 구마모토)의 영주 고니시 유키나가가 기독교 신자였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소서행장으로 잘 알려진 고니시는 임진왜란 당시 가토 기요마사와 투톱을 이룬 선봉장이었다. 하지만 둘은 워낙 사이가 나빠 같은 편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협조를 하지 않아 상대방을 곤경에 빠뜨린 경우도 많았다. 전쟁이 끝난 후 고니시 유키나가는 히고의 영주로 부임하게 되고 크리스천 다이묘의 비호 아래 이곳의 백성에게도 기독교가 널리 퍼져 나가게 된다.
그러나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고 난 후 일본은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따르는 동군과 도요토미의 아들 히데요리를 받드는 서군으로 나뉘어 내전에 들어가게 되고, 결국 도쿠가와 진영이 승리함에 따라 도요토미 편에 섰던 고니시는 몰락하게 된다. 후임으로 규슈를 지배하게 된 가토 기요마사는 라이벌이었던 고니시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기독교 신자를 박해하기 시작했고, 가토의 영향 아래 있던 인근 영주들도 이에 동참한다.
고니시 유키나가의 평생 라이벌이었던 가토 기요마사. 현재는 구마모토성으로 유명하다.
탄압에 시달리던 기독교 신자들은 구마모토 옆에 위치한 시마바라 반도에서 난을 일으키게 되는데, 이것이 그 유명한 ‘시마바라의 난’이다. 비록 기독교 신자들이 주동하긴 했지만 영주의 가혹한 세금에 시달리던 농민들도 가담했기에 시마바라의 난은 일본 중세의 대표적인 농민 봉기로 기록되고 있다. 신통력을 가졌다고 전해지는 16세 소년 아마쿠사 시로가 이끌었던 시마바라의 크리스천군은 결국 에도 정부군에 의해 모두 전멸하고, 이 전란을 끝으로 융성했던 기독교 문화도 점차 쇠퇴하게 된다. 전국시대부터 에도막부가 성립되기까지는 채 100년도 안되는 시간 동안에 일본의 기독교는 불꽃처럼 일어났다 사그러들었다.
시마바라 반란군을 이끌었던 16세 소년 아마쿠사시로 도키사다
신통력이 있었다는 전설로 인해 모 게임에서는 악역 보스로 출연하기도 했다.
에도시대의 정책적인 탄압으로 인해 일본의 기독교는 그 꽃을 피우기도 전에 시들고 말았지만 근대에 이르러 일본 기독교의 유적을 보존해야 한다는 주장에 따라 나가사키의 기독교 유적은 하나씩 복원되었다. 히라도의 성 프란시스코 성당, 사세보의 미우라 천주교회, 나가사키의 26성인 순교비 등이 바로 일본의 옛 기독교 문화를 알려주는 소중한 유적이다. 단순히 예쁜 건물이라는 감상보다는 이런 일본 기독교의 역사적인 배경에 눈을 돌려보는 것도 나가사키 여행을 풍성하게 하는 좋은 방법이 아닐지.
서양 무역에 있어 창구가 되었던 히라도를 상징하는 건조물, 門
사세보역 근처에 있는 미우라 천주 교회
Churches and Christian Sites in Nagasaki
Japan
Date of Submission: 30/01/2007
Criteria: (ii)(iii)(iv)(v)(vi)
Category: Cultural
Submitted by:
Agency for Cultural Affairs, Government of Japan
State, Province or Region:
Nagasaki prefecture
Coordinates: N32 44 41 E129 52 25
Ref.: 50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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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Christianity was introduced in Japan by Jesuit missionary Francis Xavier in 1549 and spread rapidly in the western part of the nation. The Jesuits established their mission base in Nagasaki,where a port of foreign trade with Portugal was developed. The city of Nagasaki played an important role as a key base for the missionary work in Japan. Churches and Christian culture flourished here, and the Young Delegates of Tenshō set off from Nagasaki in 1582 for Europe, where they had an audience with the Pope. Their visit conveyed a fact that Christianity had taken root in Japan. However, with the Tokugawa shogunate’s anti-Christian policy which banned the religion, Christianity was severely suppressed, resulting in the revolt against the regime (Shimabara Uprising) in 1637. Christian historic sites that tell of this period of suppression have been preserved until today.
During the prohibition on Christianity, adherents moved to remote islets and islands where they passed down from generation to generation the traditions of baptism and orasho (derived from the Latin word oratio [“prayer”], orasho are the prayers and hymns originally taught by the Jesuit missionaries and passed down orally) and continued in their faith until the ban was lifted in the Meiji period (1868-1912). Nagasaki Prefecture and the surrounding area are home to many churches built after the long period of suppression. These churches are testimonies of the suppressed adherents’ re-acquisition of religious freedom and its long process. These Christian churches are also considered as excellent examples of the quality structural design resulting from the fusion of the Western architectural techniques brought by the foreign priests and Japan’s traditional architectural techniques. The churches form particular cultural landscapes, associated with distinctive natural settings surrounding them.
Statements of authenticity and/or integrity
Most of the component features of the site have been designated as national or prefectural cultural properties and have been preserved in excellent condition under legal provisions. They are repaired and renovated as necessary at the advice of specialists. All the component features of the site have maintained their authenticity in every respect, including location, building material, technique, structure and use.
Regarding integrity, the context of the site has been fully substantiated, including the component features of the site that tell today of the period of the suppression of Christianity in Japan and the various elements that show the rebirth of Christianity after the long hiding period.
Comparison with other similar properties
Similar properties to which the churches of Nagasaki should be compared include the Churches of Chiloé (Chile) and the Historic Centre of Macao (China) on the World Heritage List and the Wooden Churches of the Northern Part of the Carpathian Basin (Hungary) on the Tentative List of the STATE PARTY concerned. The churches of Nagasaki in no way pale in value in comparison to these sites. In fact, the sites of Nagasaki churches are unique in the sense that It tells of the revival of Christianity after its long underground period.
Christian heritage of Japan
by Simon Hull
Special To The Japan Times
http://www.japantimes.co.jp/opinion/2014/08/04/commentary/world-commentary/christian-heritage-japan/#.Vek8xrMw_IU
Aug 4, 2014
Article history
NAGASAKI – Last month, the Japanese government formally announced its intention to make Churches and Christian Sites in Nagasaki its official candidate for UNESCO World Heritage status in 2016. This decision has shone a spotlight on a side of Japanese history that many around the world have little awareness of.
The story of the Catholic Church in Japan is a human story unlike any other. It begins with the arrival of the Jesuit missionary Francis Xavier in Kagoshima in 1549, and unfolds much like one of Shakespeare’s great tragi-comedies. It is complex and compelling, and certainly has the potential to be of interest to a wide range of people across the world.
It merits global recognition. Firstly, it is a crucial chapter in an even wider story: that of the history of Japan’s foreign relations. Xavier’s arrival was the catalyst for a hitherto unprecedented amount of cultural exchange between Japan and Europe, the great orchestrators of which were, in large part, Jesuit missionaries.
These missionaries soon established churches, hospitals, orphanages and educational institutions, which became venues whereby the two cultures could encounter one another. It was even a Jesuit who organized the first ever Japanese embassy to Europe (namely the Tensho Embassy — a mission comprising four Japanese boys, all Christians, which departed in 1582).
Another reason Japan’s Christian heritage is worth celebrating is because it contains many moving examples of friendships that were formed between people from very different cultures.
When European missionaries first arrived in Japan, they encountered a culture that was, at the time, almost entirely separate from their own. Huge geographical, linguistic and cultural boundaries had to be overcome. The remarkable thing is that in many instances, they were. Xavier himself quickly formed a high opinion of the Japanese, poignantly describing them as “the delight of his heart.” This heritage thus bears forceful witness to the possibility of cross-cultural friendship.
What happened next, on the other hand, serves as an iconic warning of the ever-present potential for misunderstanding when two very different cultures meet, as well as a reminder of the catastrophic consequences such misunderstandings can have.
In 1597, Japan witnessed its first ever Christian martyrdoms. Twenty six men and boys were crucified by order of Toyotomi Hideyoshi, the ruler of Japan at the time. Less than two decades later, in 1614, an edict was issued by Tokugawa Ieyasu, the founder of the Tokugawa shogunate, strictly prohibiting Christianity and expelling the missionaries from Japan. Some of the worst persecutions in the history of the Christian Church ensued, with thousands of Christians losing their lives.
The reasons why events unfolded as they did are complex, but what is clear is that from a state of promising beginnings, relations had deteriorated to the point where entire families of Japanese Christians were being burnt at the stake.
Many of the most formative events in Japanese Christian history occurred in the city of Nagasaki. When the Jesuits first began their work there in the late 1560s, Nagasaki was in fact no more than a group of desolated hamlets. It rapidly developed into a prosperous port town with a flourishing Christian community, and even came to be referred to as a “little Rome” owing to the amount of churches that were built (all of which were later destroyed).
Those Japanese Christians who survived the persecutions of the 17th century made the decision to continue their faith underground. In secluded villages and on remote islands across the Nagasaki region, they secretly recited prayers that the missionaries had taught them and hid Christian devotional items in their homes at profound risk to their lives. In the absence of priests, they baptized their children themselves, clinging to the belief that one day, missionaries would return to Japanese shores.
During this time, people living in Nagasaki and elsewhere were required at an annual ceremony to trample on a Christian holy image, often of Christ, to demonstrate that they were not a Christian. These ceremonies were a source of ongoing anguish for the Christians in hiding, who, without priests to absolve them, remained haunted by what they had done. In one community they would even return home and burn their sandals (which they hadn’t been allowed to remove), mixing the ashes with water and drinking them while begging God for forgiveness.
Following the opening of Japan in the mid-19th century, there was silent elation when these communities learned that foreign missionaries had once again set foot in Nagasaki. By that point, they had been underground for roughly two and a half centuries. Gathering the necessary courage, a small group of secret Christians made their way to the newly built Oura Cathedral and confessed their faith, whispering into the ear of a French priest the words “we are of one heart with you.” Pope Pius IX called it a miracle.
Further tragedy was to follow, however. When thousands more secret Christians were discovered in Nagasaki and beyond, the authorities were angry. A fresh wave of persecution ensued, killing many. After sustained pressure from Europe and America the persecutions ceased, and in 1873 the long prohibition on Christianity was lifted.
Despite further trials, churches were soon erected in villages across the Nagasaki region. Their subtle fusion of Japanese and Western architectural techniques gives them considerable worth, but what is equally significant is that they were built and paid for in part by the former secret Christians themselves.
As such, these churches today stand as quiet testimonies to religious freedom. Part of this UNESCO bid’s wider importance is that it focuses attention on this issue at a time when so many people throughout the world are still the subject of religious persecution. As poignant reminders of the terrible cost at which religious freedom was won in Japan, these churches would be worthy recipients of World Heritage status.
Another aspect of the bid’s wider significance concerns the city of Nagasaki. This city’s name has become engraved in the modern imagination as synonymous with tragedy, a desperate shame given Nagasaki’s rich and varied past. This bid sends a clear signal that the citizens of Nagasaki do not wish their city to be defined solely by the dreadful atomic bombing of 1945.
Above all, this is a story about hope. It is a story about how a tiny, marginalized group of people stayed true to what they believed in despite overwhelming odds. It is a story that unites cultures and continents, and a story that inspires. As such, it has universal appeal. It deserves to be shared with the world.
Simon Hull is a lecturer at Nagasaki University of Foreign Studi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