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선교유적

서울시 ‘성곽복원’, 역사 ‘무지’의 소치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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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성곽복원’, 역사 ‘무지’의 소치인가? [11]

 

체다카 (yis4****)

 

주소복사 조회 807 12.05.29 06:09 신고신고

 

 

최근, 서울시의 문화재 담당 책임자가, TV 뉴스에서, ‘한양 도성 복원, 보존, 관리 종합계획’을 발표하는 것을 보았다. 1396년 태종에 의해 축성된 18 여 킬로의 성곽 전체를 단절 없이 복원하여, 2015년까지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에 등재를 완료한다는 계획이었다.

 

그 도성 유적은, 어느 나라에서나 마찬가지로, 서울에서도, 원형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지 않다. 일제 강점기에, 그리고 그 후 도심 개발 계획에 따라 많은 부분이 훼손되거나 사라졌다. 그러나 현재, 인왕산, 북악산 쪽 산성이 남아 있고, 남산 능선에도 일부 남아 있다. 복원된 낙산의 성곽은 시민들의 좋은 산책로이다. 2009년에는 옛 동대문 운동장 자리의 성곽이 복원되었다.

 

그런데 서울시는 동대문이 서있는 부근 지역에 기존건물이나 시설들을 다 철거하고 성곽을 복원할 뿐 아니라 ‘성곽 공원’을 조성한다고 한다.

 

철거대상에는, 동대문 바로 옆에 있는, 역사적인 ‘동대문감리교회’가 있다. 동대문교회는 1890년, 10월 W.B. Scranton 선교사가 설립한 122년의 역사를 가진 교회이다. 스크랜튼 선교사는 목사이며 의사로서, 가난하고 병든 사람이 많았던 동대문 지역에 ‘동대문 시약소’(혹은 ‘동대문 부인 진료소’)를 세우고, 환자들을 치료해주며, 희망 없이 살아가던 조선인 약자들을 신앙으로 인도하던, 한국 개화의 앞장에 섰던 미국 선교사이다.

 

국내 세 번째로 세워진(감리교회중) 동대문교회는 100여년전, 개화기에, 이와 같이 조선의 ‘개화’에 커다란 공을 세운 ‘역사’(history)를 가지고 있을뿐 아니라, 일제 강점기에는, 3,1운동을 이끌었던 손정도 목사가 담임목사를 역임하며, 한국의 독립운동을 이끌기도 했다.

 

특히 동교회의 ‘종’(鐘)은, 장춘단 먼 거리까지 아름다운 음이 울려 퍼지는 우수한 품질이다. 일제때 일본인들이 무기를 만들기 위해 전국 각 가정의 놋쇠 그릇까지 뺏어 갈 때도, 이 ‘종’은 문화재적 가치를 인정했는지 몰수해가지 않았던, 역사적인 유물의 하나이다. 또한 동 교회는, 1970년대 산업개발 시대에는 인근의 가난한 근로자들, 특히 평화시장 근로자들에게, ‘쉼터’ 역할을 제공해주기도 했다.

 

2009년, 동대문교회는 서울시를 상대로 ‘교회 철거 취소’ 소송을 냈었다. 그때, 서울 행정법원 3부, 판사는, “서울 성곽은 600년 역사임으로, 120년 된 동대문교회보다 더 역사적 가치가 있다”는 식의 판결로, 동대문교회가 결국 패소 당하였다.

 

나는, 당시의 김 모라는 그 판사가 과연 어떤 역사관을 가지고 판결했는지, 또 역사 ‘가치’에 대한 어떤 판단 기준을 가지고 있는 사람인지 묻고 싶다. ‘역사적 가치’란 단순히 연수(年數)가 오래 되었다고 더 가치 있는 것은 아니다. 물론 같은 종류의 역사물일 때는 더 오래된 것이 역사적 가치가 있다.

 

그러나 완전히 다른 종류의 ‘역사물’에 대해서는, ‘연수’ 보다도, 그 유물의 ‘역사적 의미, 내포된 내용’ 그리고 ‘휘귀성, 독특성’등이 더 중요한 것이다. ‘바윗돌’이 아무리 수천 년 묵었다고 해도, 비슷한 바위 돌이 산에 수없이 많기 때문에, 또 특별한 의미가 없기 때문에 그것은 역사적 보존 가치를 가지지 못한다.

 

서울 성곽은 물론 6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 성곽이 국가방위에 특별한 어떤 역할을 했다던가 하는, 무슨 특별한 역사적 의미는 없다. 그리고 북악산 쪽 등지에 거의 원형이 남아 있다. 그것으로 이조시대 성곽의 역사적‘유물 보존’은 되는 것 아닌가? 구태여, 시내의 기존 건물 등을 때려 부수고, 18 킬로의 성곽 전체를 복원할 필요가 있는가?

 

그리고 한국 역사에서, 1800년대 말, 1900년대 초의 ‘개화’기의 역사가 얼마나 중요한가? 600년 전 이조 시대의 역사만 중요하고, 근대, 조선이 망하고 일본이 침탈하던 그 ‘격동기’의 역사는 중요하지 않다는 말인가? 어떤 의미에서는 그때의 역사가 더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 ‘근대 역사’ 기의 유물은 마음대로 때려 부숴도 되는 것인가?

 

동대문 부근의 600년 전 성곽의 역사는 이미 사라져 있다. 그 자리에는 ‘성곽 이후’의 역사가 또 계속되어 왔다. 그 ‘성곽 이후’의 역사도 보존해야 하는 것이다. 그 ‘성곽 이후 역사’물 중에 동대문교회와, 바로 그 옆에 있는 ‘이대 동대문 병원’이 있는것이다. (이대 동대문병원 구관은 이미 철거되었다.)

 

‘근대 역사’물은 때려 부숴도 괜찮은것인가? 그 자리에 옛 성곽을 복원해 놓아도, 그것은 ‘역사적 가치’가 전혀 없는 ‘가짜’인 것이다. 그것은 ‘역사 유물’이 아니다. 2010년대에 축성된 또 하나의 볼품없는 ‘짝퉁 역사’일 뿐이다.

 

세계의 역사 깊은 문명국 여러나라의 유적지들을 돌아 보라. 어느 나라도 ‘근대 및 현대 역사’의 현존 물들을 때려부수고, 그 자리에, ‘옛날 역사물’을 가짜로 조성해 놓고 이것이 ‘옛날 역사’라고 하는 나라는 없다.

 

미국의 건국 역사는 뉴잉글랜드의 보스턴 부근, Plymouth에서 시작이 되었다. 지금부터 400년 전, 102명의 청교도들이, 영국을 떠나, Mayflower 라는 180톤의 작은 배를 타고, 대서양을 건너와서 이 플리머쓰 항에 상륙하여, 신대륙에서의, 목숨을 건 ‘개척’을 시작하였다. 미국 역사에서 이것처럼 중요한 역사적 의미가 또 어디 있겠는가?

 

Plymouth 바닷가 근처에, 그 청교도들이 상륙하여 처음, ‘공회당 건물’(Common House, 일종의 교회용 건물) 과 자신들의 통나무 집을 짓고, 살았던, 첫 ‘개척 정착지’였던, ‘Layden St” 거리가 있다. 거기 가보면, 400년 전 옛날 ‘유적’은 하나도 없다. 그저 평범한 오늘날의, 건물들, 아스팔트로 포장된 거리 등 모든 풍경이 평범한 시골도시 풍 그대로다.

 

다만 그 개척자 조상들의 통나무집들 가운데로 나 있던 ‘길’, 경사 진 언덕 밑에 “THE FIRST STREET” (첫번째 길)이라는 표식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언덕 위에는 그 청교도 조상들의 뼈를 묻은 ‘석관 비석’(Sarcophagus)이 있다.

 

만일 서울시의 시장이나 문화재 담당자 같으면, 어떻게 했을까? 현재의 그 ‘Layden St.’ 지역의 집들, 아스팔트 거리, 다 때려부수고, 거기에, 400년 전 청교도 개척자들의 통나무집 정착 마을을 그대로 복원했을 것이다.

 

그러나 마사추세츠 주 정부나, 플리머쓰 시 정부는 그런 ‘무지’(?)한 방법의 ‘역사복원’ 같은것 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곳에서 좀 멀리 ‘3번’ 하이웨이 부근, (현대 건물이나 시설이 없는 야산 같은 지역) 언덕에, 옛날의 청교도 조상들이 처음 개척해서 살았던 마을을 그대로 (꼭 같은 모양으로) 복원해 놓았다. 그 이름은 “플리머쓰 식민지’ (‘Plimoth Plantation’) 모형 마을이다.

 

옛날 그대로의 통나무를 쪼개 만든 울타리로 둘러친 그 ‘모형 마을’로 들어가 보면, 옛날 마을을 그대로 완벽하게 재현해 놓았다. 통나무집들도 옛날 모습 그대로 똑 같이 지어놓았다. 그 집안에 들어가 보면, 옛날 그 집에서 살았던 집주인 그대로의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 옛날의 복장 그대로를 입고, 말씨도 400년 전 언어를 쓰며, 관광객들에게 그 시대의 풍습들, 역사를 설명해 준다.

 

주위에 현대 건물 같은 것이 없는 황량한 그 야산에 자리잡은 그 곳에서, 나는 바로 ‘Time machine’ (시간 여행기계)을 타고 1600년대로 온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이것이야말로 산 ‘역사 체험’이 아니겠는가? 동대문 지역에, 오늘날의 수많은 현대식 건물들에 둘려 쌓여, 조선시대 ‘성곽’ 모형과 ‘성곽공원’을 새로 조성해 놓는다 해도, 거기서 과연 조선시대 ‘역사’를 체험할 수 있을까?

 

서울시장 및 관계 당국자에게 묻는다. 현재, 서울시는 예산 낭비의 ‘전시 행정’은 지양하겠다고 하면서 과거에 시행했던 건설 관계 프로젝트 등을 많이 중지시키거나 계획을 변경한 걸로 알고 있다.

 

‘한양 도성 전체 성곽 복원’ 프로젝트야말로, 의미나 가치가 없는, 막대한 예산만 낭비하는, ‘전시 행정’의 표본이다. 동대문 지역의 건물들, 심지어 ‘시장 관사’까지 때려 부수면서, ‘전 구간’ 성벽을 복원할 필요가 있는가? 도심지에 억지로 다시 복원 해 놓아도, 그것은 ‘자랑거리’ 역사는 되지 못한다. ‘역사 유물’로서의 성채는 인왕산, 북악산 지역의 ‘원래’성채, 그리고 복원해 놓은 ‘낙산’성곽 등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그리고 서울시는 성곽 복원 완료와 함께 그에 따르는 해외 관광객 유치 기대를 설명했는데, 그런 발상은 ‘난센스’가 아닐까? 왜냐면 유럽이나 중국의 성곽들을 돌아 본 사람들은 알것이다. 그에 비해 서울 성곽은 규모도 너무 작고 볼거리가 되지않는 초라한 ‘돌담’ 수준 아닌가?

 

 

김택규 前 북가주 TV 방송 이사장